연남동의 보물, 프렌치 레스토랑 쿤

와인병 줄지은 벽돌 외벽 레스토랑 입구

정말 오랜만의 맛집 리뷰로, 연남동 프렌치 레스토랑 '쿤'을 다녀왔다.

재벌 3세가 취미로 운영하는 프렌치 레스토랑같다는 평을 들었는데 과연, 이라는 느낌이었다. (물론 재벌 3세라면 이런데 가게를 열진 않을 것 같지만)

레드 냅킨과 유리잔 놓인 테이블 세팅

하루 전에 예약해서 테이블은 잘 되어 있었다.

어두운 실내 조명 아래 테이블과 책장

가게 테이블은 네 개 정도로 크지 않다. 이런 기세라면 곧 사람들이 몰릴 것 같은데...

올해 개업하신 듯 하니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메뉴판 올린 클립보드와 카메라 렌즈 커버

오늘의 저녁 메뉴. 메뉴는 계절별로 바뀐다고 하신다. 이게 오른 가격이라는데, 코스 요리임에도 말도 안 되는 가격이 특징.

사실 예약하면 해산물 요리도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여름철에는 재료가 쉬이 상해 안 하시고 아마 가을이 되면 다시 하실 것 같다고.

유리볼에 켜진 전구초와 물잔

착석하니 테이블 위의 촛불을 켜 주신다.

다만 에어컨 바람이 이 촛불로 쏟아지는 통에, 바람 앞의 등불같은 촛불이 되어버렸다.

갈색 슬레이트에 얹힌 바게트와 유자버터

바게트와 유자버터. 따듯한 빵과 어울리는 유자버터는 달고 고소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맛이다

주인장께서 빵을 다 먹었는데 유자버터를 더 드릴까 물어보셔서 괜찮다고 말씀드렸는데, 하나하나 잘 체크해 주시는 섬세한 분이셨다.

요리는 먹는 속도에 맞추어 나오는 것 같고, 다음 요리를 준비해드릴지 항상 물어봐주신다.

토마토와 크림치즈, 발사믹 장식한 카프레제

두 번째로 나온 메뉴는 청포도 드레싱 카프레제 샐러드. 드레싱엔 유자도 살짝 들어간 것 같고, 발사믹 식초도 곁들여져 나온다.

야채와 치즈도 신선했고 방울토마토도 잘 어울렸다. 무엇보다 카프레제 샐러드를 방울토마토와 모짜렐라 보콘치노의 조합이 생소하면서도 재미있었던 것 같다.

얇은 접시 중앙 크림야채 리조토

세 번째 메뉴는 크림 야채 리조또. 비벼드시는 것 보다는 스푼으로 떠 드시는 편이 좋다는 안내와 함께 따뜻한 접시에 서브되었다.

리조토 위 깻잎 가니쉬와 스푼자국

위의 가니쉬는 바질인가 했는데 먹고 보니 깻잎향이 나서 깻잎인 줄 알았을 정도로 보기에도 예쁘다.

당근이 굉장히 부드러웠고 그에 비해 옥수수와 완두콩은 흐물흐물하지 않아서 돼지고기와 함께 좋은 조화를 이루었다.

생크림이 살짝 들어갔는지 굉장히 고소하고 맛있었던 리조또. 이 리조또 하나만 팔아도 맛집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블루 접시에 미디엄레어 소채끝과 아스파라거스

드디어 메인이다. 먼저 내가 주문한 미디움 레어 소 채끝 스테이크부터.

사실 이 메뉴는 단품으로만 해도 이 곳의 코스 가격이 나올 것 같은데, 양도 적지 않아서 일단 놀라고 시작한다.

스테이크가 두 줄로 되어있는데, 한쪽은 레어, 한쪽은 살짝 더 익혀져 있어서 불조절이 살짝 잘 안 된 걸까 싶긴 했지만 양쪽 다 맛있었다.

겉은 크리스피하게 구워져 살짝 불의 향이 나고, 속의 육즙은 남아 있어 정석적인 스테이크임을 느낄 수 있었고, 가니쉬로 올려진 연근과 콜리플라워와 아스파라거스와의 조합도 훌륭했다.

게다가 고기 아래에 깔린 감자와 버터, 생크림을 갈아 만든 퓨레도 굉장히 맛있었다. 한국 감자로는 프렌치의 퓨레맛을 구현하기 쉽지 않다고 하시던데 달고 부드럽고 고기와 잘 어울리는 걸 보니 잘 구현하신 듯.

검은 접시 위 레드와인 등갈비와 그린빈

여자친구가 주문한 레드와인 등갈비 조림.

요약하자면 프렌치식으로 구현된 갈비찜의 맛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조림인데도 스테이크처럼 불향이 느껴지고, 오래 쪄낸 갈비찜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텍스쳐가 살아 있어서 좋았던.

스테이크나 등갈비나 이 가격에 이만큼 나오는게 이상할 정도로 메인 양이 많이 나와서 배부르게 먹었던 것 같다.

유리볼에 수박 아이스크림과 아몬드 슬라이스

마지막을 장식하는 디저트로 수박 아이스크림이 나온다.

바닐라 시럽을 위에 얹은 수박 셔벗같은 아이스크림. 셔벗이라고 해야 할 지 아이스크림이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셰프가 아이스크림이라고 했으니 아이스크림이겠지.

수박을 가지고 이렇게 만들기 쉽지 않은데 정말 달고 맛있으면서도 수박의 느낌을 잘 살려낸 디저트였다.

창틀 위 장미장식과 와인병들

일단 이 가격에 프렌치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좀 말이 안 되는 느낌이라서 높게 쳐주고 싶다. 가격의 두 세 배 정도를 받더라도 올 사람은 올 수준인듯.

실제로 10만원 이상 하는 모 프렌치 파인다이닝보다 양도 많고, 개인적인 만족도도 높았기 때문에 가을에 씨푸드를 맛보러 방문할 것 같다.

접시를 하나하나 따뜻하게 데워 내 주는 것이나, 다음 요리로 진행할지 하나하나 물어봐주는 것이나 이 가격대에서 기대하기 힘든 세심함과 배려가 좋았다.

비싼 파인다이닝보다 구성 자체는 단순하고, 재료도 비싼 재료는 아니겠지마는 주어진 한계 안에서 낼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보물같은 레스토랑의 가장 큰 단점은 위치이다.

용산선과 경의선으로 둘러싸인 연남동 가장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데, 주변에 마땅히 주차할 곳도 없고 대중교통 접근성도 떨어지는 통에 여기까지 오는 게 가장 힘들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성산로의 연희104고지 구 성산회관 정류장에서 내려 걸어오던가, 홍대입구/가좌역에서 걸어오던가, 홍대입구에서 마포05/06번 버스를 타고 올 수 있는데 셋다 쉽지는 않다.

주차는 주변에 주차장은 없고 적당히 근처 노상주차를 하면 되는데 쉬운 편은 아닌듯.

하지만 가을에 꼭, 또 갈 것 같다.


P.S. 주인장의 인스타가 이 가게의 정보를 전하는 유일한 공식 통로인 듯 하다. 주소는 https://www.instagram.com/chef_k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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